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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0. 01:17 - Clarendon

2015 8 20

오늘 7770을 타고 오는데 과천을 지날때 쯤 뒤에서 뭔가 쌈박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뭐랄까 페인트 섞을 때 자주쓰는 플라스틱 재질의 바께쓰에 두부따위의 유동성 고체들을 가득 넣고 대리석 바닥에 그대로 쏟으면 비슷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은, 손에 만져지는 듯한 실재감의 음향이었다. 뒷문을 기준으로 앞좌석의 승객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으나 나는 뒤를 굳이 돌아보지 않고도 무슨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먼저 재앙을 눈치챈 인간이라면 모두 그러하듯이 나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창문을 열 것이냐 말 것이냐. 내가 코를 감싸며 창문을 열면 옆좌석의 사람은 뭔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주변을 살피다 그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고 이는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불쾌감을 그로 하여금 느끼게 하지 않을까. 오 차라리 모른척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 무지가 곧 약이 아니더냐. 그러나 나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냄새의 전파속도는 번개가 친 뒤의 천둥처럼 느리지만 확실한 것이었다. 차 내는 술렁였다. 아니길 바랬지만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술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창문을 연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미 나는 이 냄새의 근원이 백화수복일 것이라는 분석을 마친 상태였고 나는 그런 나의 쓸데 없는 분석력을 원망해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구토범'이 아주 뻔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누디진 드블코를 입고 있는 멀쩡한 성인 남성이었다.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하차부저를 누르고 의왕에서 하차했다.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좌석을 포기하고 입석인 상태로 나즈막히 시발거리는 모습을 보고 기사는 뒤늦게 문제를 알아채고 버스가 멈춤과 동시에 그 청년을 멈춰 세웠다.
"이봐요, 저걸 저렇게 해놓고 가버리면 어떡해요?"
그러나 청년. 자랑스러운 조던의 번호 23을 가슴에 달고 있던 그 청년은 빼애애애액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청취하지는 못했으나 이태리 사람처럼 손바닥을 뒤집어까고 손짓을 해대며 뭐라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정도의 말인 것 같았다. 이에 기사는 그를 잡아끌고 다시 버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잖아도 그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고 적어도 그가 쏟아낸 오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는 했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정말 극적인 제스처와 함께,
"어,어,어,어? 사람치네"
하며 농구선수마냥 양손을 들고 가슴을 내밀며 자신에게 손대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누군가 휘슬을 불었다면 완연한 농구코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할 말이 없어진 기사는 몇번소리치며 누가 치우라고 새끼야 정도의 말을 하다가 제 자리로 돌아와 휴지를 챙기고 뒷좌석에 가 조용히 토사물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혹시 휴지 필요하신분 계세요?하고 승객들에게 물으니 승객 8명정도가 손을 들었다. 통통 튀었나보다. 휴지를 나눠주고 기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문을 닫았다. 기사는 다시 출발했고 창밖의 남자는 아직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택시라도 부르는 것일까. 엄마한테 이르는 것일까.
차 내는 아직 그의 내음이 그득하였다. 몇명은 같이 내린 것 같았다. 하긴 남의 토를 잔뜩 묻힌 가방을 이고지고 버스에 앉아있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소시민처럼 조용히 앉아 '앞자리에 앉아있길 잘했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곧, 내가 내릴 역에 다다랐다. 나는 다른 피해자로 인해 2차 피폭이 되지는 않을까 조심하면서 몸을 사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뒤에는 경찰차가 등을 켜고 따라가고 있었다. 택시나 엄마를 부른게 아니었나..
팔을 잡아당기고 욕을 한 것으로도 충분히 고소가 되는 사항인지에 대한 법적 지식따위는 내게 없다만, 그리고 그 경찰차가 단순히 순찰중이었던 것일수도 있지만, 괜시리 기사가 불쌍해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 궁금해졌다. 당신의 헬조선은,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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